분류에서는 우선 레벨이 일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상위레벨에서 적용된 원칙은 하위 레벨에도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적용되어야 합니다. 문학의 장르를 구분할 경우에도 장르류에 적용한 원칙이 장르종에서도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적용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분류의 체계성이 유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항목들이 장르 구분의 기준으로 예시가 될 수 있습니다.
① 작품의 매체 (媒體) 또는 형태
② 작품의 제재적 특성
③ 창작목적 내지 작가의 태도
④ 문학적인 관습 (convention)
문학이 전해지는 매체의 특성을 생각한다면 ①에서는 언어가 구전(傳)된 것인가 기록된 것인가에 따라 구전문학과 기록문학으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구전문학은 특정한 작가가 없는 대중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고, 시기적으로는 문자 이전의 문학이 됩니다. 그러나 문자에 의한 기록성 여부가 문학의 장르를 다르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언어의 형태에 따라 구분하는 방식을 취하면 산문과 운문의 구분이 가능해 집니다. 운문이 리듬을 중시하는 데 비해 산문은 리듬을 크게 고려하지는 않습니다. 즉, 언어 자체의 음악성을 고려하는 것이 운문이라면 언어의 전달 기능을 중시하는 것이 산문인 것입니다. 근대 이전에는 서사 양식에 속하는 서사시도 산문으로 쓰였고, 심지어는 과학적인 성격의 글이나 생활에 필요한 실용적인 글도 운문으로 쓰였으며, 역사도 운문으로 기록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제왕운기」 같은 것이나 「동명왕편」 같은 것은 운문으로 기록된 것의 예이며, 가사(歌辭)의 율조와 조선 소설의 율조가 비슷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사와 소설의 구분이 모호해집니다. 운율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시와 가사의 구분도 안 되는 것입니다. 결국 언어의 형태가 장르를 구분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문학의 제재는 다양하고 광범한 영역에 걸쳐 있습니다. 개인의 사생활에서부터 한 국가나 민족의 흥망성쇠, 세계사의 소용돌이까지 인간과 관련되는 것 치고 문학의 제재로 부적합한 것은 없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제재를 기준으로 장르를 구분할 때, 제재의 수만큼 장르의 종류가 있어야 합니다. 출판사에서 서적 소개를 위해서 작품의 제재상의 특징을 언급한 것이 장르처럼 혼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애정을 다룬 소설을 애정소설, 개인적인 생활을 다룬 소설을 사소설, 농촌을 배경으로 했거나 농민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농민소설과 같은 식으로 구분해 가는 것이 ②의 기준에 의한 구분입니다. 주인공이 상인이면 상인소설, 노름꾼을 주인공으로 다루었으면 도박소설, 어부를 주인공으로 했다고 어부소설, 그런 분류는 별로 의미가 없는 일입니다. 농민소설이니 시정소설 (市小說), 기업소설, 교육소설, 사건소설 등의 명칭이 그대로 옮긴 장르명칭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③의 경우는 작품의 기능이라든지, 작가의 정신적 태도 등에 의한 구분입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문학의 기능이 작가의 목적이나 의도에 따라 일방적으로 규정되지 않습니다. 또 문학의 속성 자체가 그러한 점을 스스로 거부하는 것이라면 장르 구분의 조건이 되기 어렵습니다. 다만 무책임하게 써낸 작가의 성실성이 결여된 통속문학을 경계할 필요는 있습니다. 그리고 지나치게 경직된 목적문학으로 문학의 본질을 배반하는 경우를 경계해야 하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이 항목에서 또 하나 유의할 점은 문학 유파를 앞에다 더함으로써 굳어진 명칭에 대한 것입니다. 낭만주의 소설, 사실주의 소설, 상징주읠 시, 낭만주읠 시 같은 것들이 그러한 명칭들의 예입니다. 문학에서의 유파는 문학 외적인 요소를 더 많이 포함하는 면이 있고, 문학 이해의 한 방편은 될 수 있을지 모르나 문학 자체에 본질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되지 못합니다. 이는 세계의 위대한 문학가들이 어느 유파에 속했느냐보다는 작품의 위대성으로 평가받는 점을 보더라도 곧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작가의 태도와 관련하여, 독자와의 관계도 함께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저급한 독자들의 취미나 오락적인 목적을 위해 쓴 작품과 독자층을 비교적 덜 고려하면서 인간의 깊은 고뇌를 통찰하고 원대한 꿈, 현실을 초월하고자 하는 지향 주의를 함께 포착하는 순문학의 영역에 드는 작품은 구분이 됩니다. 「러브스토리」(Love Story)와 「의사 지바고」(Doctor Zivago)를 구분하는 기준은 그러나 불분명합니다. 주간지에서 무녀 (巫女)의 비극적인 가정생활을 다룬 소설과 김동리의 「을화(乙)」를 구분하는 방법은 통속성 여부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대중문학과 순문학을 구분하는 것은 작품의 질적인 면이기는 하지만 장르적인 명칭은 아니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문학적인 관습은 문학의 형식과도 관련되는 것으로 일종의 약속 체계라 할 만한 것입니다. 시에서 한 사람의 고뇌를 읊었다고 해도 시인이 사랑에 빠졌다고 하지는 않는다. 소설에서 1인칭으로 서술되었다고 해도 '나'가 곧 작자요 작자의 체험담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연극에서 방백 (aside)을 같은 무대 위에 있는 상대방 배우는 못 듣는 것으로 인정하는 것들이 문화적인 관습의 예가 됩니다. 문학은 작자 편에서나 독자 편에서나 이러한 공통의 관습을 통하여 상상적인 체험을 해 가는 하나의 체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르도 이러한 관습의 측면을 갖는 것입니다. 이것이 '장르는 제도'(institution)라는 말의 한 의미입니다. 위에서 살펴본 대로 어떠한 것도 장르 구분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되지는 못합니다. 그렇다고 위의 기준을 종합하여 적용하는 것도 안일한 방법입니다. 장르의 구분이 단순한 분류가 아니라 문학의 본질적인 국면을 해명하는 하나의 방법인 것입니다. 장르의 구분이 단순한 분류가 아니라 문학의 본질적인 국면을 해명하는 하나의 방법이라면 문학 자체의 속성을 검토하여 장르 구분의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공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학과 인간 (0) | 2022.07.07 |
---|---|
문학의 허구성 (0) | 2022.07.06 |
문학의 언어성 (0) | 2022.07.05 |
문학 장르의 분류 (0) | 2022.07.04 |
문학장르의 개념 (0) | 2022.07.02 |
문학의 교시적 기능과 인간을 위한 문학 (0) | 2022.06.30 |
문학의 일반적 기능과 쾌락적 기능 (0) | 2022.06.30 |
문학의 문제들 - 문학과 언어, 문학과 체험 (0) | 2022.06.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