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인간에 관한 일이다
예로부터 사람을 가르치기 위한 주요 과목의 하나로 문학을 꼽아왔습니다. 이 점에 관해서는 서양에서는 물론 동양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서양에서는 사람을 가르치는 세 가지 과목으로 역사·문학·철학을 들고 있으며, 이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사람이 사람답게 형성되기 위한 기본 과목이었습니다. 그런데 동양 문화를 대표하는 공자는 『주역』·『서경』·『시경』을 편찬하고 이를 사람답게 가르치기 위한 기본 과목으로 삼았습니다. 『주역』은 우주의 형이상학을 집대성한 것으로 서양에서의 철학이며, 『서경』은 춘추전국시대의 역사이므로 서양에서의 역사 그대로이며, 『시경』은 바로 문학의 정수가 아니겠습니까. 이는 중국에서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한국·일본 등 이른바 유교문화권에 속하는 나라들은 모두 그랬었습니다.
서양의 경우, 르네상스 시대 이후로 사람을 가르치기 위한 세 가지 주요 과목 중에서 문학을 가장 으뜸으로 들기도 하였습니다. 그 당시 군인이며 정치가이자 시인이었던 필립 시드니는 이 셋을 다음과 같이 비교하기도 하였습니다.
철학은 추상적인 언어로써 사람에게 교훈을 주려고 하나 너무 까다로운 이론이라서 실제로 행할 때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며 역사는 과거의 모범적인 인물을 보여 주기는 하지만, 단지 특수한 예만 암시할 뿐 보편적인 진리를 가르칠 수 없습니다. 즉 철학은 지나치게 보편적인 이론을 애매하게 전개하고 역사는 지나치게 특수한 사실을 무의미하게 나열할 뿐입니다. 그러나 문학은 구체적인 사실을 실례로 사용하여 보편적 진리를 가르쳐 주는 것이니 문학은 역사와 철학의 일을 한꺼번에 해내는 셈입니다.
-시드니, 『시의 변호』에서
그렇다면 문학이 과연 무엇을 대상으로, 무엇을 담고 있기에 사람을 사람답게 가르치는가요? 문학은 흔히 실용성을 추구하는 현대인에게는 어필하지 않습니다. 문학이 인간 이해를 주로 다루고 있긴 하지만 의학이나 생물학에서 다루고 있는 과학적·체계적 지식에 의존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사람을 알아서 이용할 힘을 주지도 않습니다. 인간을 안다는 것이 인간을 지배하기 위한 것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문학은 무력하기 짝이 없는 학문입니다. 그런데도 문학은 계속 존재하여 왔으며, 철학·역사와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음은 어떤 이유에서인가요?
또한 어째서 문학이 사람으로서의 온전한 구실을 하도록 가르치는 것인가요? 그것은 한 마디로 문학이 인간을 총체적으로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총체적으로 제시해 주고 있는 것이 비단 문학만은 아닐 테지만, 그러나 문학은 철학보다도 역사보다도 심리학·사회학보다도 인간을 철학적으로 역사적으로 심리적 사회학적으로 묘사하며 시대와 사회에 따라 성격과 내용이 판이한 인간관을 제시합니다. 따라서 문학은 시대에 따른 인간 정신의 다양성을 보여주며 단편적이 아닌 총체적인 인간관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는 것입니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사람으로서 산다는 것을 뜻합니다. 문학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터득한 진리의 한계를 알게 해 주며, 그에 따라 새로이 투쟁하고 저항해야 할 대상을 찾아 주기도 합니다. 그것은 또한 삶에 대한 태도를 끊임없이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문학의 저변에는 언제나 개인적인 체험을 비롯하여 타인의 상황에 대한 이해와 이념에 의한 경험의 확대 • 심화 등이 내재합니다. 그러므로 생활 경험 (여기서 생활 경험이란 개인적인 체험은 물론 현재나 과거에 있은 타인의 이해와 그들이 관여한 사건에 대한 이해까지를 모두 포함한다)이 바로 문학의 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문학이 삶을 묘사하고 표현한다고 할 때, 그것은 바로 체험을 표현하는 것이며, 삶의 외적 현실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문학은 그것이 속한 시대와 사회를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당대가 아닌 과거나 미래를 다룰 경우라도 그것은 그 사회가 보는 (또는 그 시대에 속한 문학인이 보는) 과거이거나 미래입니다. 역사소설이나 미래소설만이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서정시의 경우에도 시가 담고 있는 사랑 • 슬픔. 분노. 증오 • 기쁨 등의 감정 역시 당대의 상상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문학이 '초 시대적인 성격을 갖습니다.' 라는 것은 문학적 진실의 보편성 초월성을 말하는 것이지 문학이 비 시대적 반사회적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문학이 시대와 사회를 뛰어넘어 읽히고, 감명을 주는 것이라는 의미도 마찬가집니다.
작가의 체험이 문학의 출발점이 된다고 해서 작가 자신의 생애나 시대적 체험을 그대로 복사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여기에서 체험이 문제 되는 것은 작가의 상상력이라는 것이 생애와 시대적 체험을 바탕으로 우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체험과 상상력은 상관성이 있습니다. 인간의 생애와 체험은 자신만이 아니라 남에게도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 것과 남 것의 차이를 안다는 것은 삶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마련해 주기 때문입니다.
가령 우리가 시인 윤동주의 작품을 읽을 때, 이 시인의 생애가 개인적이면서도 동시에 시대적 공통성을 지니고 있기에 비록 윤동주와는 달리, 고향을 버리지 않은 많은 독자로부터 시대적 공감을 획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서 윤동주가 '佩, 鏡, 玉 이국 소녀들의 이름을 부르며 슬퍼하는 것은 낯선 땅으로 이주한 한국인의 슬픔과 그의 소년적인 슬픔이 결정된 것이며 '우물 속에 비치는 미운 얼굴'은 그 시대의 한국인들의 슬픈 자화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문학이 우리에게 삶의 이해를 가능하게 해 준다고 말하는 것은, 문학 작품이 표현하는 현실의 단면에서 전에 보이지 않았던 삶의 한 특징을 부각시키며, 과거의 위대한 체험들이 작가로 하여금 삶의 새로운 것을 인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 시대의 비극작가들은 종교적 체험의 세계를 극적인 가시성으로 보여 주고자 했으며, 비할 데 없이 유리한 역사적 상황에서 있었던 셰익스피어의 체험이 그의 작품을 만들게 했습니다. 당시 그는 이미 『플루타크 영웅전』에서 로마에 관해. 읽었던 점과 영국의 과거의 폐허가 그를 에워싸고 있었던 점, 그리고 폭력적인 인물들에 의해서 국사가 극적으로 이끌어지고 처참하게 끝맺은 엘리자베스 왕조 등, 당시의 역사를 움직이는 모든 일들을 직접 보았고 들었으며 겪었습니다. 셰익스피어를 이해하는 데서 참다운 작가의 관찰력이 무한한 것으로 미치는 경우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때론 작가는 개인적으로 체험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고 형성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문학가는 어떤 역사가도 포착할 수 없는 현실성을 지니는 것입니다.
작가는 대개 구체적 상황에서 문제를 만들어내며, 문제를 체험합니다. 그러나 작가는 자신의 체험을 문학적 언어로써 나타낼 때, 철학적이거나 개념적이지 못합니다. 오히려 비 개념적이고 비철학적이며 비체계적입니다. 그러므로 문학에서의 체험이란 의미 있는 경험을 말하며, 이는 대개 인생에 대한 지혜와 관련됩니다. 따라서 문학이 사람을 가르치는 주요 과목 중의 하나이며, 사람다운 덕을 세우는 데에 문학이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지만, 그러나 문학가(작가)가 결코 교사는 아닙니다. 문학가가 때로는 사상가이며 철학자가 될 수는 있지만 모든 문학가를 그렇게 부를 수는 없습니다. 문학은 철학이나 사상을 체계 있게 논리적으로 풀어나간 것이 아니라, 인생에 대한 경험적 사고를 자유스럽고도 의미심장하게 표현한 것일 뿐입니다.
문학이 인간의 문제를 다룬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인간의 문제란 실로 광범하고 복잡다단해서 아무리 훌륭한 문학가라고 해도 모두 다룰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문제에서 기본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문제일 것입니다. 여기에 파생되는 문제, 이를테면 인간의 죄와 구원의 문제라든가, 정신과 물질의 문제, 가정. 집단. 사회 등의 문제도 결국은 인간의 문제로 환원되는 것입니다. 잘 알려진 그리스 시대의 비극작품으로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이나, 토머스 하디의 『테스』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운명의 문제를 다루고 있고, 단테의 『신곡』이나 치에테의 『파우스트』는 인간의 죄와 구원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때의 자유나 구원의 문제 (특히 후자의 경우)는 법이나 종교적 구원과는 달리, 한 사람이 죄를 짓는 과정을 더듬어가, 그 사람이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사회적 조건을 문학이 밝혀냄으로써 그 사람이 악인도 선인도 아닌 한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입증시킵니다. 문학은 그 사람을 인간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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