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우리는 문학이 주체적 질문 형식으로 이뤄진다는 사실을 살필 필요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주체적 질문이란 소설의 주인공이나 시적 퍼소나가 세계에 대하여 보고 듣고 생각한 바를 묻는 것을 말합니다. 이때의 물음은 세계에 대한 물음의 시각을 가지게 되고, 그 시각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그 작품의 성격은 결정됩니다. 어빙 하우는 「도스토예프스키론」에서 작가가 작중 인물을 진보적 인간으로 설정하느냐 보수적 인간으로 설정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인간들을 누구의 눈으로 보고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주인공이 시대의 전면에 서 있는 인간이라 할지라도 그 인간을 보고 있는 사람이 보수적이라면 그 소설은 보수적 세계관을 지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시각(시점)은 가치관의 문제와 긴밀하게 연관되고 있는 것입니다. 시각의 문제를 해명하기 위하여 오르테가 가제트(Ortega Y. Gasset)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들고 있습니다.
한 저명인사의 임종을 그의 아내와 의사, 신문 기자와 그리고 우연히 그곳에 온 화가 등 네 사람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저명인사의 죽음은 아내에게 너무도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편의 죽음이라는 사건은 그녀가 바라본 자기 '밖'의 사건이 아니라 그녀 '안'에 있는 그녀의 일부가 된 것입니다. 되풀이하자면 그녀는 그 사건에 너무 깊이 들어감으로써 그 사건의 '일부''일부'가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사건과 그녀의 인격은 일체가 (자연에 몰입하여 초客一體가 된 것처럼) 된 셈입니다. 의사의 경우 저명인사의 아내처럼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슬픔은 아니지만 최소한 직업적 양심의 면이나 인격의 심정면에서 감동을 가지고 이 슬픈 사건에 생명을 부여합니다. 신문 기자는 의사와 마찬가지로 '직업상의 의무' 때문에 즉 죽음의 장소를 취재하려고 그 장소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의사의 직업은 의사에게 사건의 개입이 꼼짝없이 강요하고 있는 반면에 신문기자에게 직업은 사건의 '개입'이 아니라 '관찰'을 요구할 뿐입니다. 즉 기자는 사건에 감정적으로 관여하지 않고 그저 방관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의 관심은 독자들에게 감동을 줄 만큼의 명문을 써야겠다는 것입니다. 화가는 한 인간의 죽음에는 무관심한 채 죽음의 '장면'을 잔뜩 노려보고 있습니다. 그에겐 그곳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관심 밖입니다. 그 사건의 비극적 의미는 그의 '지각' 앞에 있습니다. 그는 단지 외래적인 것, 즉 빛. 그림자. 색채에만 주목합니다.
'저명인사'의 죽음을 바라보는 이 네 사람의 시선은 각각 다른 시점을 취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자신의 죽음과 진배없는 아픔으로, 의사는 직업적인 것으로, 신문 기자는 보도용으로, 화가는 그 비극적 의미를 지각하는 면으로서 대응합니다. 하나의 죽음이 이처럼 보는 사람의 각도에 따라 각각 다른 죽음이 되는 것은 시각이 그 죽음의 내용과 의미를 결정하기입니다. 그 죽음이 소설의 형태를 취한다면 그 소설은 하나의 시선을 택하게 될 것이고, 그 죽음을 바라보는 여러 사람의 시선은 주인공의 시선에 의하여 통합될 것입니다. 적어도 문학이 주체적 발문 형식이라고 보는 현대적 관점에서는 그러할 것입니다. 인간은 신의 보물 상자가 텅 비게 되었을 때 비로소 창조되었다고 피코델라 미란돌라(Pico della Mirandola)는 말한 바 있습니다. 신의 존재를 거부한 인간은 주체적 존재로서 스스로 자기 삶을 선택하고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때의 선택과 책임은 윤리적인 것이지만 그의 삶을 향상적으로 만들고자 한 욕구가 깊이 개재되어 있습니다. 세계 이해와 자아 향상을 위한 인간의 노력과 연관된 이 욕구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욕구의 하나입니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욕구란 인간이 지닌 주관성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고 합니다. 인간은 세계를 의미 있는 것으로 경험합니다. 그 의미는 사물들에 근거를 둔 것임은 물론 세계와 인간의 가치 창조적 관계에 근거를 둔 것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자신이 활동한 기반으로서의 자아 세계와 그리고 자신에게 의미 있는 구조인 하나의 총체성으로서의 역사 세계를 아울러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계 (자아세계와 역사세계) 파악은 세계가 끊임없이 변모하는 것이고 인간의 정신적 욕구 또한 그칠 줄 모르는 것이어서 과정적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적 세계 파악은 거기에 과거가 개입되고 미래가 전망된다는 면에서 인간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가치 정향적 면을 갖는다. 그 한 보기로서 윤흥길의 다음 소설을 보겠습니다.
어려서 내가 달구지 바퀴에서 본 머리카락은 하나같이 검고 반질반질 요기가 흐르는 비단실 같은 것들뿐이었다. 어머니는 매일매일 해 질 녘마다 자기 머리털 한 올씩을 뽑아 달구지에다 매다는 것으로 하루 가운데서 가장 의미심장하고 엄숙한 일파로 삼곤 했다. <......> 그것은 한 여자의 일편단심이면서 그의 혼자만이 이는 처절한 출혈이요 동시에 절망이기도 했다.
작중인물인 그 여자가 머리카락을 뽑아 달구지에 매단 것은 그 여자의 현재적 행위이면서 과거가 개입된 행위입니다. 그 여자가 그 달구지를 끌고 거리로 나갈 때 그 달구지는 과거를 실은 달구지가 되고 거리 모습이 아름답다든가 어둡다든가, 을씨년스럽고, 찬란하고, 고통스럽다고 느낄 때에도 그 느낌에는 그 여자의 과거와 현재가 복합됩니다. 여기서 문학작품은 주인공의 의식이 투사되는 시간, 즉 유동적 의식이 세계를 비추어 존재하게 하는 시간이 되며, 그 의식이 비춘 세계는 미래지향적 세계가 됩니다. 예컨대 그 의식 시점은 캄캄한 밤길을 달리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와 같습니다. 그 헤드라이트가 비추어 줌으로써 캄캄한 세계는 나에게 모습을 드러내어 존재하게 되고 내가 가야 할 길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문학작품에서 작중 인물이 세계를 본다는 것은 그 세계를 존재하게 하고 변하게 함은 물론 세계 속에서의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자기를 객관화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되풀이하자면, 우리의 하나하나의 감각 작용을 통하여 시공간의 지평이 열린다는 것은 세계가 나로 하여 존재하게 되는 일일 뿐만 아니라 세계 속의 나를 보다 확실히 알고 나를 세계에로 확장시키는 도정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황석영이 「삼포가는 길」에서 삼포를 찾아가는 것도 삼포가 그를 길러준 고향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아가서는 삼포가 이제 이상 세계가 아니라 이미 도시화된 황폐된 곳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의 내면 (고향)에로의 여행을 그치고 그의 외면, 현실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문학에 있어서 특수 경험이 보편 경험이 되어야 하는 것도 같은 까닭에서 입니다..
・・・・・・ 비밀 아지트 만들기 훈련을 받을 때 나는 내 손으로 비밀 아지트를 백개 이상 만들어 보았다. 행군하다 날이 밝거나 추격당할 때 임시로 숨기 위해선 수채 구멍, 자연굴, 상여집, 보리밭, 아카시아밭, 갈대밭, 가시덩굴 속, 지서 또는 군부대에 인접한 곳을 이용하지만 일정기간 동안 공작활동을 펴기 위해선 굴을 파서 비밀 아지트를 만들어야 되기 때문에 파는
연습을 수 없이 되풀이해야만 되었다.
이 글은 최창학의 「먼 소리 먼 땅」의 일절입니다. 남북 분단의 비극을 다루고 있는 이 글은 개인의 체험이자 곧 민족의 체험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 다루고 있는 소재가 실지로 있었던 일이 아니라는 점은 작가가 밝힌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몇몇 자료를 참조했을 뿐 전혀 허구로 이루어진 것이며, 여기서 초점을 맞춘 것은 남북의 어떤 쪽이 어떻다는 것보다는 아무 죄 없는 한 사람이 어떤 식으로 어떻게 시대의 제물이 되며, 나아가서는 한 사람의 생애를 지배하는데 상황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묻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가을이 해쓱한 이마를 들고 나를 보았을 때'라고 어느 시인이 말할 때에도 '가을의 이마'는 존재한 것이 아니지만 시인의 특별한 감각에 의해 가을에 이마가 주어지고, 가을이 나에게 구체적인 모습으로 떠오르게 되며, 그리하여 그 가을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독자에게도 그 심상을 전달받게 됩니다. 특별한 감성이 보편적 감성으로 변용되는 경우입니다. 문학은 이와 같이 특수성을 보편성으로, 주체성을 객체성·전체성으로 확대 심화시켜 인간의 삶을 새로운 지평으로 향해 떠나게 하는 인간적인 양식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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