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의 갈래는 다른 어떤 기준보다도 우선적으로 비평의 기능에 따라 분류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비평의 기능을 보는 관점에 따라 그 분류는 다르게 됩니다. 우리는 여러 학자들의 분류 가운데서 티보데 (A.Thibaudet)의 분류와 에이브럼스(M. H. Abrams)의 분류를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티보데의 분류는 최재서(崔載瑞)가 「비평의 형태와 기능」(1935)에 소개한 것을 참고로 하였습니다.
티보데는 비평을 다음 세 가지로 분류하였습니다.
1. 자연발생적 비평
2. 직업적 비평
3. 대가(大家)의 비평
이러한 분류는 일견 비평가를 중심으로 그 직업에 따라 나누어진 것으로, 비평 그 자체의 기능을 벗어난 듯 한 인상을 주지만 비평의 본질이나 목적, 그리고 비평의 대상을 고려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첫째, 자연발생적 비평은 소박한 단계의 것이지만 그 시사성(時事性)과 현장성을 염두에 둘 때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원래비평이 17세기 살롱의 회화(會話)로부터 비롯됐다고 보면, 이 비평은 소박하지만 원초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이 비평은 성질상 최근의 작품을 대상으로 하며, 그 생명은 시사성에 있습니다. 이 비평은 현재를 살고 있는 민중 자신이 하는 것이기도 하며, 이들은 신문비평이 대변하기도 합니다. 이 비평의 기능은 매우 동적이며, 이들은 살아 있는 현재의문제와 부딪칩니다. 이 비평은 그들의 영웅이나 시인을 임명하고 그들을 옹호하고 그들에게 영광과 찬사를 돌립니다. 이 비평은 시류에 민첩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판단이 불안한 점이 있지만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신문비평가는 극단적인 경우 자신의 글이 그날 읽혀질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유동하는 현재와 흐름을 같이 한다는 점에 이비평의 장점과 아울러 약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관점에서 오늘의 말을 가지고 오늘의 작가를 말하는 오늘의 비평은 선명하게 오늘의 존재를 투시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물론 이 비평이 인상적인 판단의 위험성과 당파성, 작품을 읽지 않고 비평할 가능성 등의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는 점도 우리는 간과할 수 없습니다.
둘째, 직업적 비평은 자연발생적 비평과는 달리 학자가 과거의 정신으로써 과거의 작품을 상대로 하는 비평입니다. 따라서 직업적 비평가는 무수한 고전으로부터 공통적 이념을 추출하고, 그 추출된 모든 이념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질서를 부여하여 건설된 세계를 제시하고자 합니다. 그들은 전통적 질서와 운동, 과거의 두터움에 대한 의식과 그 지속의 실재성을 실감하게 하는 문학의 총체로서 보편적 관념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생트뵈브나 랑송과 같은 대비평가들이하나의 통일체로서 의식하고 있는 프랑스문학은 이의 좋은 예일 것입니다.
직업적 비평의 기능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① 비평가는 작품이 자리하고 있는 위치를 규정하고 아울러 그 가치를 판단하는 재판관입니다. ② 직업적 비평의 판단은 개인적 취미에 지배되어서는 안 되며, 작품을 평가. 감식하는 과학입니다. ③ 직업적 비평가는 대학교수로서 교단에서 학생들에게 고전의 법칙을 설명하고 그 가치를 판단합니다. 이상의 세 가지 기능을 분류 • 판단. 설명으로, 그리고 각각 정돈• 감정(定). 명령으로 축약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비평의 한계는 ① 동시대인에 관해서 말하지 않고 고전비평에 국한된다는 점,② 고전적인 문학 양식과 규칙의 권위를 현대 작가에게 요구할 위험이 있다는 점 등이라고 하겠습니다.
셋째, 대가(大家)의 비평은 예술가 자신의 비평입니다. 여기서 대가는 비평의 대가가 아니라 대작가라는 말입니다. 예술의 대가가 자기 자신의 작품을 고찰하고, 자기 자신의 창작 과정을 반성하는 비평입니다. 그러나 예술가의 비평은 개개의 작품이나 구구한 독자를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창작 세계의 비밀을 독자에게 알려주는 것이요, 자기 자신이 작품을 쓰는 동안의식하지 못했던 것을 자신에게 의식시키는 것입니다. 작품이 형상의 창조라면, 이것은 이론의 창조일 것입니다. 예술의 창조에 준하여 본다면 이것은 비평에 기여하는 원리나 이론의 창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평을 작품의 해석에, 그리고 판단에 국한한다면 예술가의 창조적 비평은 비평에서 제외될 것입니다.
작품의 제작 원리의 창조와 작품의 가치 판단은 방향을 달리합니다. 그런데 가치판단의 근거가 무엇인가를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체계화되고 이론화된 모든 것이 예술가의 심원한 내성(內省)과 통찰에서 발원한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예술가의 비평과 실제 작품과의 사이에는 괴리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현실에 존재하는 작품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그 본질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는 순수 비평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이 예술가의 비평의 결함인 동시에 강점은 주관적이라는 데 있습니다. 비평의 공정성이나 객관성을 문제 삼을 때 이 주관성은 거추장스러운 것이지만, 독창적인 창조력에 스며드는 주관성은 어떤 의미에서 '필요악'으로도 보입니다. 직업적 비평이 왓슨(G. Watson)이 분류한 입법 비평이나 기술 비평과 관련이 있는 것이라면 이 비평은 심미적 비평과 관계가 있습니다.
위에서 우리는 비평가를 중심으로 한 포괄적인 비평의 분류를 고찰하였습니다. 이제 에이브럼스가 『거울과 램프』(the mirror and the lamp,1953)에서 시도하여 보다 이론적 체계를 갖춘 비평의 분류를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그는 비평을 다음 네 가지로 분류하였습니다.
1. 모방론(模倣論): 취급하는 사물과의 관계
2. 실용론(實用論): 독자에게 미치는 영향과의 관계
3. 표현론(表現論): 창작한 작가와의 관계
4. 객관론(客觀論): 자체로서 존재 양식의 기준
이상의 네 관점을 설명하기 위해 에이브럼스는 다음과 같은 좌표를 설정했습니다.
위의 분류는 작품을 구심점으로 각각의 관계를 고려할 때 성립됩니다.
(1) 모방론은 문학이 인간의 만사, 우주의 만상을 대상으로 하여,그것들을 모방 • 반영. 재현. 모사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예술이 모방이라는 개념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대부분의 이론에서 되풀이되어 거론되었으나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해 오지는 않았으며 청중에게 영향을 주는 수단으로서의 모방의 개념이었습니다.
(2) 실용론은 문학 작품이 독자나 사회일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를 중요시합니다. 시드니 (P.Sydney)에 있어서 시는 쾌락을 준다는 가장 가까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모방되며, 그것은 마침내 교훈이라는 궁극적 목적을 이루게 됩니다. 그래서 모방의 대상 그 자체가 이러한 도덕적 목적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이 됩니다. 예술가의 목적과 작품의 특성을 청중의 성격. 요구. 쾌락의 원천에 맞추는 실용주의적 좌표는 호라티우스 시대로부터 18세기 말까지 문학비평의 중요한 특징이었습니다. 그러나 도덕적 책임에 대한 강조는 점점 시인의 타고난 천재성, 창조적 상상력, 그리고 감정의 자발성으로 옮겨가서, 판단. 학식 및 인위적 억제와 같이 그에 상반되는 속성들이 희미해져 갔습니다.
(3) 표현론은 문학 작품을 작가의 독특한 정신의 표현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는 예술가 자신이 예술의 산물과 그것을 평가하는 기준을 생성한다는 관점을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표현론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습니다. 하나의 예술 작품은 본질적으로 내적인 것이 외면화된 것입니다. 이것은 감정의 충동 밑에서 작용하는 창조적 과정에서 생기며, 작가의 지각과 사상과 감정이 결합된 산물로 구체화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시든지 통과해야 할 첫 기준은 '그 시가 순수한가?' 또는 '창작과정에서 시인의 의도, 감정 및 신제 심리 상태와 일치하는가?' 하는 등의 질문입니다. 또한 시인이나 작가의 독창성 창조력, 천재성 역시 그의 문학적 위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됩니다.
(4) 객관론은 문학 작품을 사물. 독자. 작가로부터 격리시켜 놓고 하나의 독립된 존재 또는 사물로 보는 것입니다. 작품은 우리가 태어난 세계와는 독립된 하나의 세계로서 그 목적은 교훈이나 쾌락을 주는데 있지 않고 단지 존재하는 데 있습니다. 이런 경향이 극단화될 경우 우리는 예술 지상주의적 일면과 이 이론이 상통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칸트(I. Kant)의 '무목적(無目的)의 합목적성' 이후 포우(E.A. Poe)의 시론, 그리고 엘리엇과 랜섬(J. C. Ransom)에 이어지는 비평이론으로, 작품에 대한 이들의 객관적 접근은 혁신적인 비평 방법이 되어왔습니다.
위에서 거론한 비평의 유형들이 절대적인 것이라고 할 수도 없으며 어떤 작품을 비평할 경우 이들 중 어느 하나만을 적용하는 것도 아닙니다. 문학 이론가 웰렉은 비평을 외재적(外在的) 비평과 내재적 (內在的) 비평으로 나눈 바 있는데, 모방론, 실용론, 표현론 등은 전자에 속하고 존재론은 후자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학 비평에서 중요한 것은 비평의 정의나 분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얼마나 적절히 복합적으로 사용하여 이들 상호 요소들을 어떻게 규정, 서술, 평가하는가에 있습니다. 이러한 과제에 대한답은 구체적인 방법론을 살펴보고 검토함으로써 가능할 것입니다.
'비공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포스트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 (0) | 2022.07.16 |
---|---|
포스트모더니즘과 모더니즘 (0) | 2022.07.16 |
문학의 비평 – 역사주의 비평 (0) | 2022.07.15 |
비평 방법의 분류 (0) | 2022.07.14 |
비평의 기능 (0) | 2022.07.12 |
비평의 정의 (0) | 2022.07.11 |
문학은 인간의 주체적인 질문형식입니다 (0) | 2022.07.10 |
문학의 유기적 통일성 (0) | 2022.07.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