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주의 비평의 방법은 그 기원이 고대에서부터 비롯된 것이지만 근대적 문학 비평의 방법으로 확립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와 18세기 영국의 드라이든(J. Dryden)과 존슨(S. Johnson)으로부터 비롯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드라이든은 모든 시인이란 그가 살고 있는 시대에 속한다고 믿었으며, 존슨은 "현재를 정확히 판단하기 위해 우리는 현재를 과거에 대립시켜야 한다”라고” 주장하였습니다. 19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역사주의 비평의 방법은 확립되었는데, 프랑스의 생트 뵈브(C.A. Sainte-Beuve)와 테느(Hippoblyt-Adolphe Taine)가 그 대표적 이론가였습니다. 생트 뵈브는 "내가 수립하고 싶은 것은 문학의 자연적 역사입니다”라고 선언했으며, 그는 전기(傳記)적 접근을 강조하여 "나에게 문학적 산물은 사람과 그의 성격의 나머지 것들과 전혀 구별되거나 유리되지 않습니다. 나는 작품을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 사람 자체에 대한 지식과 독립적으로 작품을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나는 '그 나무에 그 과일' (tel arbre, tel fruit)이라고 기꺼이 말하겠다”고 주장했습니다. 테느는 생트 뵈브의 인과(因果)의 결정론적 과정을 발견하려 노력하면서,, 문학 연구의 방법에서 자연과학적이며 실증주의적인 면을 강화하고 체계화한 비평가입니다. 테느는 그의 『영문학사(英文學史)』(History of English Literature, 1863)에서 문학 분석의 표본을 종족, 시기, 환경의 범주로 명명하였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국민적 특성. 역사적 시기·사회적 환경 등의 환경 결정론을 주장한 것입니다.
생트 뵈브와 테느의 이론들은 구라파 대륙은 물론 미국의 문학 연구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런 경향은 1920년대까지 널리 파급되었으나, 1920년대 말에 이르러 이른바 형식주의 비평가들로부터 공격을 받았으며 1930년대에는 자유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의해서 공격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1940년대와 1950년대 초에 역사주의 비평 방법은 퇴조하였거나 방어적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950년대 말에 이르러 역사주의 비평 방법의 중요성은 새로이 인식되었으며, 그들의 목적과 이론은 다시 정립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역사주의 비평 방법의 근원적인 신념을 확인할 필요가 있는데, 그것은 "어떤 문학 작품도 마치 그것이 그 자체가 완전한 것처럼 접근될 수 없다"는 확신이라 볼 수 있습니다. 각 작품은 그것에 관련되는 모든 정보를 참고하여 연구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가정은 형식주의 비평방법과 정면으로 대립되는 것이지만, 그레브스타인이 요약한 것처럼 다음과 같은 역사주의 비평 방법이 제시하는 여섯 가지 기본적인 명제들은 문학 연구에서 필수적인 것들로 보입니다.
첫째, 역사주의 비평가는 그가 작품의 믿을 만한 원본을 사용하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둘째, 그는 작품이 창조된 특별한 시간과 장소에서 씌어졌을 작품의 언어를 인식하고 일합니다. 세째, 그는 작가의 삶과 물질적 환경, 특히 연구 중인 작품의 창작에 영향을 주는 것들의 관점에서 작품을 연구하며, 작가의 모든 경력의 문맥에서 작품을 고찰합니다. 넷째, 그는 작가와 그의 작품들을 그것에 선행하거나 동시대의 사람들과 비교하고, 그 작품들을 변화시켰을지도 모를 영향들을 평가합니다. 마찬가지로 역사 비평가는 다른 작품들과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을 작품 그 자체를 연구합니다. 다섯째, 그는 작품을 한 시대로서 즉 작품이 형성되는 문화의 표현으로서 그리고 그 문화의 상황과 사건들의 가능한 반영으로 봅니다. 여섯째, 그는 작품을 문학적 전통, 관습, 양식 혹은 장르 내에 두며 다른 유사한 작품들과 그것의 관계를 결정합니다.
위의 가정들은 중복되는 경향이 있지만, 우리는 그들의 특별한 관심이 어떤 것이든 역사주의 비평가는 지식을 비평 행위의 본질적인 것으로 본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학자와 비평가의 차이점을 구별할 필요가 있는데, 그것은 다음 세 가지 점에서 비교될 수 있습니다. 첫째, 학자는 본질적으로 문학의 연속에서의 의미 있는 변화나 유동에 관심이 있으며, 비평가는 문학 작품들의 유사성과 영구성에 가장 관심이 있습니다. 둘째, 학자는 작품의 올바른 배치와 정확한 이해에 관심을 쏟으며, 비평가는 작품의 해명과 평가에 관심을 갖습니다. 셋째, 학자는 작품의 기원과 내력에 집중하며, 비평가는 주어진 작품의 미적 본질에 집중합니다. 학자들과 비평가들의 상호 관계를 긍정적으로 해석하자면, 학자는 사실들과 어려운 자료들을 제공하고 문학 비평가는 작품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데 그것들을 이용한다고 하겠습니다.
위에서 거론한 여섯 가지 명제를 항목 별로 간략히 개관하여 보겠습니다.
① 원본의 확정 : 신뢰할 만한 원본(Text)의 설정은 역사주의 비평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문학 연구가들에게도 필요하고 중요한 출발점이 됩니다. 불분명하거나 잘못된 작품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문학 연구의 방향을 오도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원본 비평 (Textual Criticism)의 목표는 한 작가가 쓴 작품 그 자체의 순수성을 회복하는 것이며, 판을 거듭함에 따르는 잘못으로부터 그 순수성을 보존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원본에 관한 문제는 고전적인 작품뿐만 아니라, 현대의 작품에도 해당됩니다. 예를 들면 이광수의 『무정』(1917)은 그것이 발표되었던 당시와 매우 다른 모습으로 오늘날 전해지고 있습니다. 한용운(韓龍雲)의 시집 『님의 침묵』(1926)도 1970년대 초까지 잘못된 이본(異本)들이 널리 유행했으며, 이것이 바로 잡힌 것은 송욱의 『篇解說님의 침묵』(1974) 이후로 보입니다. 시인 김소월의 경우, 처음 발표된 작품과 그것이 한 권의 시집으로 묶여 『진달래꽃』(1925)으로 출판되었을 때의 작품을 비교해 보면 시인 자신에 의해 많은 첨삭이 가하여졌음이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데, 이것은 김소월의 사후 김억에 의해 간행된 『소월시초』(1939)『소월 시초』(1939)에서도 계속되어 복잡하고도 어려운 원본 비평의 문제를 야기합니다. 최근 그 실마리가 어느 정도 해결된 것은 김종욱(金鍾旭) 『原本素月全集』(1982)에 이르러서입니다. 영문학에서 『『캔터베리 이야기』나 셰익스피어 작품에 대한 원본 연구는 학자들의 각고의 노력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며, 또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것도 사실입니다. 원본 비평가는 가치 있는 모든 문서를 다 검토하고 나서 결정판을 준비합니다. 여러 이본들과의 면밀한 대조, 타당성 있는 수정을 통해 확정되는 과정은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객관성과 타당성에 의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② 언어의 역사성: 언어는 역사성을 갖는 실체(實體)입니다. 작가가 사용한 언어의 특별한 의미를 그 언어가 사용된 시기의 문화적 배경 속에서 설명하고 규정하기 위해서 역사주의 비평가는 적절한 기록. 근원 그리고 전기적 자료 등에 관심을 갖습니다. 우리는 작품의 언어적 설명을 학자에게 의존합니다. 그는 작품을 읽는 독자가 나중에 역사를 무시하도록 역사를 이용합니다.
正졍月월ㅅ 나릿 므른
아으 어져 녹져 ᄒᆞ논ᄃᆡ
누릿 가온ᄃᆡ 나곤
몸하 ᄒᆞ올로 녈셔
아으 動동動동다리
와 같은 「동동」이란 고려가요는 "正月의 냇물은/얼으려 녹으려 하는데/세상 가운데 나서/몸이여 홀로 살아감이여"라는 뜻으로 파악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이는 어학적인 주석에 속하는 것인데, 이를 다시 '새해 들어 해가 바뀌고 해빙을 맞아 한층 몸에 스며드는 고독과 연정을 그리는 情의 표현'이라 본다면 이는 비평적 해석에 속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이와 유사한 예는 현대 문학 작품에서도 접할 수 있습니다.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에서 '깝치지'를 흔히 '까불다'로 보는데, 이는 명백히 잘못된 해석을 유발합니다. '깝치다'는 대구 지방 사투리로 '서둘다'는 말이다. 서둘다와 까불다는 근본적으로 다른 의미입니다. 김소월의 시 「접동새」에 나오는 '아우래비 접동'의 '아우래비'는 단순한 새소리의 흉내가 아니라 '아홉 오라비'의 축약어인데, 이와 유사한 혼동과 오해가 무수하게 시 해석상에서 범해졌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일입니다.
그러므로 역사비평가는 언어를 다루는 데 두 가지 면을 고려해야 합니다. 첫째, 그는 현재의 독자가 작품 당시의 청중들의 언어적 이해와 인식의 상태가 되도록 해야 하며 둘째, 그 언어를 현대에 살 수 있는 매체로 취급해야 합니다. 이런 이중성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동시에 작용합니다. 피어스(R. H. Pearce)는 그의 『역사주의 재론』(HistoricismOnce More, 1958)에서 “언어를 연구하며 우리는 역사를 연구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언어를 연구할 수 있도록 역사를 연구합니다....... 역사를 공부하며 우리는 문화를 공부합니다. 문화를 연구하며 우리는 그 문화의 시를 연구합니다. 그 시를 연구하며 우리는 그 언어를 연구합니다. 이 체계는 하나이며 전체입니다”라고” 하여 언어와 역사의 상관성을 적절히 지적했습니다.
③ 작가연구: 학문적 연구의 대상으로서 전기적 자료는 역사주의 비평가가 이용하는 가장 가치 있는 종류의 자료에 속합니다. 역사주의 비평가는 작가가 의도했던 문맥에 따라 예술 작품의 성패를 판단하므로, 그는 작가의 의도를 밝혀 준 모든 자료를 찾습니다. 작가의 정신적 물질적 조건과 관계된 사실들, 예를 들어 그의 집의 위치, 장서, 가족상황, 친구들, 정치관, 채무관계 등 작가가 보고 듣고 느끼고. 알았던 모든 것들은 그 자체로서의 목적에서가 아니라 작가의 인간적인 목적과 그것들이 그의 예술에 구체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역사주의 비평가는 어머니, 양모, 부인을 잃어버린 앨런 포우가 아름다운 여인의 죽음이 시의 가장 좋은 주제라고 믿게 된 것은 우연의 일치 이상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내용을 판별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형식을 조명하기 위해서도 작가의 삶과 작품 사이의 상호 관계를 찾습니다. 헤밍웨이의 간결하고도 객관적인 문체는 신문기자로서의 훈련을 반영해 줍니다. 이광수가 어려서 부모를 잃었다든가, 김동인이 대지주의 아들이며 동경에서 미술학교에 다녔다는 것은 어느 정도 그들의 기질이나 작품의 특질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작품과 인간을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이 역사주의 비평가의 기본적 전제인 것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작가 연구는 웰렉과 워렌이 『문학의 이론』(Theory of Literature, 1966)에서 말한 것처럼 “생산된 작품의 해석에 빛을 던져 주는가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된다”라고” 하겠습니다.
문학적 전기(literary biography)는 에델(L. Edel)이 「문학과 전기」(Literature and Biography, 1967)에서 말한 것처럼 대체로 세 가지로 나뉠 수 있습니다. 수집 가능한 작가의 모든 경력 사항을 총동원하여 시간상의 선후에 따라 작성한 포괄적 연대기 (chronicle compendium), 작가의 경력이 그의 문학을 파악하는 데 관계된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중심으로 포괄적 연대기를 재조정하여 기술한 문학적 초상화(literary portrait), 비평가에게 주어진 모든 자료를 용해하여 비평가가 해석하는 방향으로 작가의 정신적 모습을 재구성한 유기적 전기 (organic bio-graphy)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유기적 전기는 비평적 전기 (critical biography)라고도 부를 수 있으며, 비평가의 관점에 따라 이야기의 형식과 방법이 달라지며, 문학적 전기에서 예술에 접근하는 가장 고차적인 방식이라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비평적 전기에 해당하는 작업으로는 고은(高銀)의『이상평전』(1974)과 『한용운평전』(1975), 그리고 최하림(崔夏林)의 『김수영평전』(1981) 등을 들 수 있습니다.
④ 명성과 영향: 한 사람의 작가나 그의 작품은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작가는 그에 앞선 많은 선배들은 물론 동시대의 다른 작가들로부터 영향을 받습니다. 셰익스피어나 괴테 같은 대가의 경우 그들의 명성은 독자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예를 들어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은 사람들 중에 이혼이 격증하고 자살자가 속출하였으며, 베르테르가 입은 푸른 웃옷 노란 조끼와 바지가 유행했다는 사실은 명성과 영향의 관계를 단적으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문학적 영향 관계는 두 가지 관점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일반 독자에게 미치는 영향이며, 다른 하나는 창조적 독자 곧 동시대의 작가나 후배 작가에게 미치는 영향입니다. 위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당시의 모든 청년들이 베르테르처럼 사랑하기를 원했고, 모든
소녀들은 롯데처럼 사랑받기를 원했다는 것은 분명히 일반 독자에게 미친 영향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철(鄭澈)의 『사미인곡(思美人曲)』이나 『속미인곡(美人曲)』등의 가사들은 그의 동시대는 물론 그 뒤의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준 바 있습니다. 1930년대의 시인 정지용(鄭芝)의
경우 당대의 독자들은 물론 다른 시인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음은 물론, 조지훈(趙芝薰)•박목월(朴木月)•박두진(朴斗鎭) 등의 후배 시인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서정주(徐廷柱)도 '미당학교''미당 학교'라는 말이 성립될 정도로 강력한 영향을 미친 사람인데, 그를 추종하는 시인들이 관습적으로 작품을 모작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는 영향 관계에 있어서 그 영향을 극복하지 못한 예로서, 영향을 받는다는 것과 이를 극복하는 것 사이의 어려움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작가의 사숙 관계는 역사주의 비평가들의 좋은 연구 대상이 되어 왔으나 단순히 유사성을 대조하는 연구는 싱거운 작업으로 끝나 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영향 관계의 규명은 둘 또는 그 이상의 작가들 상호 관계를 구별하고 그들의 정당한 위치와 가치를 확정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작가나 작품도 상호작용 없이 단독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역사주의 비평의 근본 명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⑤ 문화적 배경: 역사주의 비평가의 중요한 관심 중의 하나는 과거에 대한 인식, 곧 예술 작품이 시대적 존재라는 것입니다. 트릴링 (L. Trilling)은 그의 『과거의 개념』 (The Sense of the Past, 1953)에서 예술 작품이 역사에 참여한다는 것을 세 가지 측면에서 관찰했습니다. 첫째, 작품 그 자체는 역사적 사실을 기록합니다. 둘째, 그 자신의 존재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셋째, 그 미적 특질인 신비는 그것의 과거와 구별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역사주의 비평가의 입장과 달리 역사가나 사상사가(思想史家)는 예술 작품을 기록적 증거의 한 조각으로서 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는 예술 작품을 한 시대의 문화를 재구성하거나 그것에 들어가기 위해 사용합니다. 반면에 역사주의 비평가에 있어서 역사란 결국 문학적 표현이 되는 것이며, 예술 작품의 장르는 역사적 순간입니다. 따라서 역사성의 인식은 작품의 이해와 평가를 위한 기초 작업으로 인정됩니다. 그러나 비평가가 작품을 설명하기 위하여 과거로 되돌아가야 한다면, 그는 문학작품의 기원에 관한 연구를 문학작품의 현재적 가치평가에 대한 설명으로 착각하는 발생론적 오류(發生論的 誤謬, the genetic fallacy)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또한 문학사의 문제에 부딪치게 됩니다. 특히 문학사에서 야기되는 어려움은 문학적이라는 용어 속에는 '영원불변의 절대적 가치'와 '시대에 따라 변하는 상대적 가치' 사이에 상극적인 의미가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또 문학사 기술에 있어서 그것이 문학 자체의 질서에 의한 역사라는 특수성이 있는데 잘못하면 정치사나 경제사의 일부와 같은 문학사가 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문학사를 서술하는 데 있어서 내용이나 방법론적 난관은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많은 문학사들이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분명히 나타납니다. 다른 사람의 방법론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문학사를 잘못 기술하는 자가당착적인 오류는 우리가 극복해야만 하는 필연적 과제입니다.. 문학사가 현재를 발판으로 과거를 기술하고 미래를 조망한다고 할 때 그 어려움은 한층 더 가중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⑥ 문학적 관습: 문학적 관습은 형식적인 면뿐만 아니라 주제나 소재 등의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있습니다. 예컨대 시조의 형식은 이조 55백 년 동안 굳어버린 형식적인 관습인데, 그 관습적 특징은 초·중·종의 3장 45자 내외이며, 특히 종장 첫 구절과 둘째 구절에 관한 제약은 널리 알려진 바대로 엄격한 것입니다. 또 그 내용적인 면에서도 격동하는 시대적 상황보다는 유교적 이념이나 평화로운 전원생활을 읊은 것이 많다는 점은 주제가 얼마만큼 관습적인 방식을 취하고 있었는가를 입증하는 것입니다.
또 개화기 시대 이후의 과도기 시대에는 시조와 같은 정형시적 형태가 무너지고 자유시 형식이 대두되었으며, 그 내용에 있어서도 자유·평등·구국 등의 문제가 거론되었던 것도 문학적 관습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레빈(H. Levin)이 그의 『뿔피리의 문』(The Gates of Horn, 1966)에서 "어떤 관습 없이는 예술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라고” 한 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문학적 관습은 작가와 독자 사이의 묵계이며, 형식적인 제약이나 표현상의 난점 등으로 말미암아 필연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문학적 관습은 시간의 축적에 따른 역사적 산물이라 볼 수 있습니다. 문학 외적 또는 내적 요인들로 말미암아 문학의 관습들은 변모하고 소멸되며 생성됩니다. 보다 더 궁극적으로 말한다면 서정적인 것. 서사적인 것. 극적인 것 등의 장르류는 확고부동한 문학적 관습 중의 하나이며, 이것은 인간의 존재 방식을 나타내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장르류의 하위 개념인 장르종(種)의 경우 서정적인 것이 창가. 시조. 가사. 자유시 등으로 변하는 것처럼 시대나 역사의 변천에 따라 바뀝니다. 이 문학적 관습에서 특수성이 강조되는 이유는 독특한 관습 속에 내재하는 특별히 의도된 의미 체계를 규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예를 들어 시조의 종장에 가해진 율격적 규칙을 도외시하고 그 언어적 의미만 파악한다면, 그런 율격적 장치가 갖고 있는 특별한 의도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역사주의 비평 방법의 기본적인 가정과 원리들을 개략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지난 세대 동안 역사주의 비평은 공공연하고 빈번하게 공격의 대상이 되어 그 장단점이 노출되었습니다. 역사주의 비평가들은 결과보다는 과정에 관심을 가졌고, 그들의 방법론과 연구는 비평을 지연시켰을 뿐만 아니라 금하기조차 했으며, 문학작품에 대한 철저한 예비 조사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됨에 따라 작품 자체는 무시되거나 인상적인 비평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작품의 과거성에 대한 집착은 그것의 현재성에 대한 평가를 내리지 못하게 했으며, 작품 자체에 대한 독자의 직접적 경험을 앞질러 독자의 이해를 방해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반박으로 역사주의 비평의 옹호자들은 학문적 연구를 통해 수집된 작품의 자료에 대한 비평가의 지식은 다른 비평적 방법에서 불가능한 반응의 정확성과 안전성을 갖는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문학 작품이 자율적인 유기체이나 그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충분히 이해될 수 없는 유기체라는 것입니다. 이를 종합할 때 역사주의 비평가는 무엇보다도 그의 문학 비평에서 학문적 수준과 판단이 성공적으로 결합될 때 목적을 성취할 수 있다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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