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교시적 기능
문학의 기능에는 교시적 기능도 있습니다. 문학이 사회를 교화하는 도구의 한 수단으로 인식된 것은 동서양 모두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공자는 詩三百一言藏之日 思無邪(시삼백일언장지일 사무사)라 하여 시의 공리적 이용 가치를 인정하여 시의 인간에 대한 유용성을 인정하였으나, 플라톤은 감성에 의한 시는 이성을 마비시킬 위험성이 있다하여 시인을 자기의 공화국에서 추방하였습니다. 시에 대한 긍정적 견해나, 부정적 견해의 공통점은 시가 사회에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근대소설의 원조인 리차드슨(S.Richardson)이 그의 파멜라(Pamela)에서 소설은 종교와 도덕을 포함한 교훈적 의미를 지녀야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루크레티우스도 진리나 사상이라는 쓴약에 정서나 쾌락이라는 달콤한 꿀을 바른 것이 문학이라 하여 문학이 독자에게 전달하는 사상의 교시적 기능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문학 속에 종교, 도덕, 사상을 용해하여 명작으로 남긴 예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톨스토이는 내가 소설을 쓰는 것은 성경 한 구절을 읽기 위해서이다고 말한 것이나 김만중의 <구운몽>에 조화되어 나타난 유불선(儒佛仙)의 종교적 교훈, 호오머 (Homer) 일리아드, 괴테의 <파우스트>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그리고 한국의 고대소설이 권선징악을 표방한 도덕적 교훈 등도 이러한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런 포우 (poe)의 교훈적 이설 (didactic heresy) 처럼 모든 문학작품이 도덕적인 교훈을 목적으로 썼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자연스럽게 도덕적 측면에서 수용하는 경향이 많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어떤 의미에서는 도덕가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합니다. 한편 문학 속에 이데올로기를 내포하여 작가 자신의 인생에 대한 태도나 사상을 독자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 글을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체로 모든 문학 작품에는 주제라는 중심사상이 작가의 의도성에 의하여 다른 문학적 요소와 함께 혼용되어 나타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르네 . 웰렉이 문학 예술가는 선전가가 되어야 할 의무를 도덕적으로 가져야 한다라는 논의에 일단 수긍할 점이 있습니다. 단순한 선전가가 아닌 책임감 있는 선전가로서 지시적 관념적인 지식과 사상이 아닌 즐거움과 감동으로서 설득력 있게 이데올로기를 선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르크스주의 문학은 계급사회에 있어서 일정한 사회적 의식의 한 형식이다. 인간의 의식 행위 등이 계급적 생활과 계급투쟁의 제조건에 의해 결정되는 계급사회에 있어서는 모든 의식 활동을 내포하여 인간적 사회활동을 계급투쟁의 제과제에 봉사한다. 임의의 다른 이데올로기와 마찬가지로 문학은 계급적 인식의 한 형태다. 여기에 다른 종류의 이데올로기와 과학과의 사회적 발생과 사회적 기능과의 공통점이 있는 것으로 문학은 이러한 이데올로기와 함께 일반적인 생산적 계급적 기초 위에서 성장한다.
위의 마르크스주의 문학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문학은 계급투쟁에 봉사하며, 계급적 기초 위에서 성장하고 이데올로기의 한 형태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조는 러시아에서 발달되어 1920년대의 한국문단에 크나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특히 카프를 중심으로 한 김기진, 박 영희의 활동은 독보적 존재였습니다. 클라르테 운동과 브나로드 운동의 사상적 영향을 받은 팔봉은 <지식계급이 민중으로 파고들 것, 이것이 지식계급 (글 쓰는 자)의 임무다. 브나로드! 백수 노동자인 인테리겐자의 임무는 이것뿐>이라고 하면서한 시대를 풍미했던 것입니다. 물론 선전을 위한 문학은 카프의 작품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1910년대의 이광수 민족주의, 계몽주의가 그렇고, 1970.80년대의 민중문학 노동문학도그 궤를 같이합니다. 이상과 같이 문학은 독자에게 도덕적, 종교적 교훈을 주고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선전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공리주의적 견해가 문학의 교시적기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을 위한 문학
원시사회에서부터 현대사회에 이르기까지 인류역사의 변천과 함께 인간에 대한 인식과 가치관이 달라졌습니다. 신 중심의 사회에서 왕권 중심 사회로, 왕권 중심의 사회에서 현대의 인권 중심 사회로 변이됨에 따라 인간의 자유, 평등, 존엄성 등에 작가들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문학의 참된 기능은 인간 문제를 탐구하고 인생이 무엇인가를 밝혀주는 일입니다. 인간의 존재를 해명하고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오늘의 작가 시인들이 독자들에게 그 지표를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싸르뜨르 (J.P.Sartre)가 작가의 자유를 대중에게 인식시킨다고 말할 때 문화의 효용 • 기능은 종래의 쾌락설과는 무관함을 알 수 있습니다. 친구에게 보낸 그의 서한문의 한 구절을 보겠습니다.
최근 10년간 나는 분명히 눈을 떴다. 말하자면 현실세계의 엄혹성 앞에 망상에 취해 있었던 한 문인이 제 정신을 찾았다고 말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희생시키고 착취하고 있는 현실의 세계, 먹을 것에까지 부자유를 느끼는 사람이 너무도 많은 이 세계에서 관념적 철학적인 불건전성을 희롱하는 것 같은 사치가 도대체 무슨 가치가 있단 말인가.
절박한 현실세계에서 그는 문학의 쾌락설도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이데올로기도 하나의 사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대는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 구원을 위한 여러 방법론이 헷세, 싸르트르, 까뮈, 포크너 등에 의하여 실험적으로 대두되었습니다. 부패한 사회의 일면을 고발함으로 인간을 옹호할 수 있다고 믿는 <고발의문학>, 그 시대의 상황을 대변하는 <증언의 문학>, 현대의 매카니즘에대항하는 <항거의 문학>, <호소의 문학〉 등이 모두 인간의 존재와 삶의 지표를 위한 문학입니다. 그러나 이런 다양한 방법론의 성공 여부는 후일의 문학사들의 평가에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현대문학의 기능이 인간 그 자체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은 하나의 커다란 발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문학은 하나의 명백한 기능만을 소유하는 것은 아니라, 오히려 수많은 기능들을 소유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문학의 기능은 정서적 공감인 것입니다. 미적 즐거움을 줄뿐만 아니라 도덕적, 종교적, 철학적인 교훈과 아울러 인생과 인간에 대한 탐구도 병행되어야 하는 상보적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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